성철스님일화 2012년 6월 1일 금요일
성철스님 일화 1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벼슬하는 사람들이 거들먹거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역의 경찰서장이 새로 부임하여 해인사에 인사차 들렀다. 동행한 사람들
조차 사찰에서의 예절을 잘 몰랐던가보다. 경찰서장이 법당 앞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고 있었다. 그 때 성철스님이 나타났는데 허름한 누더기 옷차림이었다.
성철스님이 조용하게,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됩니다.”
했다. 경찰서장은 행색이 초라한 노스님의 말에 시큰둥하며
“여기에 금연이라고 적어 놓은 것도 아니고 담배 좀 피우면 어떻습니까?”
라고 말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철스님이 대뜸 가래침을 뱉어 경찰서장 얼굴에
뿌리면서 일갈하였다.
“당신 얼굴에 가래침 뱉지 말라는 표시가 없는데 괜잖겠지요!”
경찰서장은 그 자리에서 얼굴 붉히며 떠났고 그 노스님이 성철스님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장군에는 멍군이 최고다.
이 또한 대기설법(對機說法)이 아니겠는가.
2 성철스님은 불침번 경비를 하는 야경(夜警)을 잘하는지 예고 없이 암행을 하
신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해 겨울, 한 학인(學人)스님이 야경을 하다가 야경실(夜警室)이 너무 추
워서 몰래 아궁이에 장작을 몇 개 피웠다고 한다. 화재의 위험 때문에 난방이
금지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만 암행을 하던 성철스님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헌데, 한 차례 혼
쭐이 난 학인이 성철스님에게 던진 말이 걸작이었다.
“입을 만들었으면 밥을 주어야지요.”
입이 아궁이라면, 밥은 장작을 뜻한다. 신참 학인이 백전노장인 대선사(大禪
師)에게 던진 일종의 선문답이자 도전장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성철스님은
별다른 응수가 없었는데, 대중들이 놀란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날이 밝자마
자 인부들을 시켜 아궁이를 진흙으로 봉해버린 것이다.
그 날 스님들은 일제히 성철스님의 행동은 아궁이를 막은 것이 아니라 학인
의 입을 막은 것이라는 논평을 쏟아냈다. 정말 무엇을 막아버린 것이었을까?
3
학인스님들이 장경각 담 뒤에 서 있는 호두나무에 올라가서 호두를 따고 있
었다.
마침 그 때 성철스님이 먼 곳에서 지팡이를 짚고 걸어왔다. 갑자기 학인들이
나무에서 후다닥 내려와서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았다.
산책길에서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노스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씀하였
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저 놈들이 그냥 달아나네”
나쁜 짓도 아니었는데 그 때는 성철스님 그림자만 보아도 무서웠다.
성철스님이 강릉의 한암자에서 일심으로 수행하고 있을때 일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한중학생이 축구선수로서 각종대회에 상을 훱쓸다시파한 우수한 축구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슬럼프인가 운동을 게을리 해었는지 모르지만 점점 성적이 떨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잘나가던 학교선수들은 각종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예선전에 떨어지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막상 졸업하니 스카웃 제의 하는 학교가 없어 하는수 없이 운동을 포기하고
일반고 학교에 진학 시험을 치루었으나 운동때문에 공부를 소흘히 할수밖에 없는
그로서 당연히 학교에 떨어져 서울의 유명학원에 등록 재수하고 있었다
그해 할머니 마저 돌아가셔서 성철스님이 기거하는 사찰에 가족과 함께 49재를 치루려 갔다
그렇게 몇일 부지런히 다니다 어느날 성철스님이 보고 얼굴이 수심이 가득한 학생을 보고
대뜸 하시는 말씀이 고등학교에도 떨어지는 실력으로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할것인가
이넘 불효한 자식이 49재는 무엇하려 지내려 하는냐
참회하는 마음으로 내일부터 하루에3000배려 10일동안 3만배려을 일심으로 하거라
하고는 호통을 치면 몰아 붙쳤다
스님의 호통에 겁이 난 학생은 그다음날부터 3000배려를 을 시작하였으나
자기 체력으로 도저히 무리리다 이데로 계속하다 무리하다 죽을것 같았다
그리하여 포기하고 집으로 갈까하여 스님에 고하고 하산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스님이 정진하는 암자로 향했다
문앞에서 스님을 불렀으나 대담이 없다
하여 창문에 뚫어 스님의 모습을 보니 스님은 캄캄한 어둠속에 좌선하여
잠도자지 않고 염불을 외우고 계시는 것이었다
겁이 더럭난 학생은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돌와왔다
다시 용기를 내어 3000배를 계속하니 평소 운동하던 그라 끈기와 요령 완력등이 생겨
2만배를 채우고 더욱 정진하여 3만배을 채우고 스님에게 고하고 집으로 내려 왔다
그리하여 서울에 상경하여 학원과 독서실을 전진하며 일념으로 공부에 전념한 결과
그가 원하던 사학의 명문인 경복고에 입학하고 그기서 더욱 열심히공부하여
서울대학및 대학원 ,미국유학까지 거치고 대학교수로 복직하여
열심히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다
염화미소
참선하던 어떤 젊은 스님이 백련암으로 찾아갔다.
성철 큰스님을 대면한 자리에서,
“저는, 염화미소拈花微笑 화두가 잘 되지 않습니다”했다.
그 질문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화두를 어떻게 들고 있는데?”
“세존이 꽃을 들었는데 가섭이 왜 웃었을까 하며 의심하고 있습니다.”
“너무 길다, 그냥‘가섭이 왜 웃었나?’하고 의심해라.”
그 순간, 갑갑하던 마음이 확 열렸다.
스승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다. 이를테면 막힌 부분을 뚫어줄 줄 아는 안목이다.
큰스님의 훈수에 궁금증이 풀어진 젊은 스님은 해우소에서 볼일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저 똥통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
미혹의 길을 헤맬 때 바른길을 안내해주는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축복이다.
전, 아닙니다
그해, 겨울은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가야산 골짜기마다 눈이 쌓였다.
동안거를 시작하는 첫 날, 선열당禪悅堂에 모여 방장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었다.
법상에 오른 성철 큰스님이,
“한철도 길다, 삼일 혹은 칠일 안에 공부를 마쳐라”라고 법어를 내린 후 염려스런 눈빛으로 짐짓 일렀다.
“여기 모인 수좌들 가운데서 목숨 걸고 독하게 공부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다들, 논 열 마지기
에 기집 하나 안겨주면 속가로 나갈 멍청한 놈밖에 없는 것 같다.”
그때 말석에 앉아 있던 어떤 학인이 손을 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전, 절대 아닙니다!”
너무 자신만만한 까닭에 큰스님께 그만 대꾸를 한 것이다. 큰스님은 화를 내는 대신 빙그레 웃으시며,
“그래 두고 보자, 이놈아”하셨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후 자신 있게 대답했던 그 학인은 사랑의 인연을 만나 환속하고 말았다.
누구나 수행길은 백퍼센트 장담할 수 없다. 지나친 자만과 오기는 스스로를 묶기도 하고 부러지게도 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성전암에 있는 동안에 결제와 해제 앞뒤로 일 년에 네 번은 문을 열어 신도들을 위하여 기도법회를 열고는 하였습니다.
어느 때에 파계사 큰 절 법당이 비가 새어서 주지스님이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스님은 기도법회에 온 아는 보살님에게 일렀습니다. "큰 절 법당이 비가 샌다고 하니 보살이 불사를 하지.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절대 큰 절 주지 스님에게는 누가 불사를 하는지 모르게 해야 돼. 시자가 심부름을 해 줄 터이니 보살이 돈 들고 직접 나서지는 말어."
그렇게 해서 그 보살은 남 모르게 큰 법당 불사를 하였습니다.
그 뒤에 성전암에 기도하러 오는 길에 불사가 잘 되었나 하는 마음에서 큰 절에 들렀습니다.
보살은 새로 고친 법당에 올라 108 참회의 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참 절을 하고 있는데 웬 스님이 들어오더니만,
"웬 보살이 스님 허락도 없이 큰 법당에 들어와 멋대로 절을 하느냐" 고 큰 소리로 호령하며 꾸짖더니
그만 보살을 내쫓고 말았습니다. 그 보살은 그 길로 성전암에 올라와서 성철스님에게 말했습니다.
"큰 스님, 정말 오늘 제 마음이 한량없이 기쁘고 깨끗합니다. 큰 절 법당에서 허락없이 절한다고 쫓겨났습니다.
그 스님이 제가 불사 시주를 한 사람인 줄 알았으면 잘 대접한다고 얼마나 법석을 떨었겠습니까?
오늘 대접받고 올라오는 것보다 박대받고 올라오는 이 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참 불사지."
성철스님의 한마디였습니다.
참으로 '그 스님에 그 신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70세 남짓 된 노인이 한사람 찾아왔다.
그때도 3천배 절하고서 내방에 들어왔다.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니 자기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하도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한다.
"나이가 70이나 되면서 다른 사람이 가보란다고 와? 이 늙은이야 자기가 오기 싫으면 안오면 그만이지 대체 무슨 일로 옆에서 그리 권했오?"
"내가 40여년을 참선을 하는데 벌써 20년전에 확철히 깨쳤습니다. 그후 여러 스님들을 찾아 다니면서 물어봐도 별 수 없어 이제는 찾아다니지도 않는데, '성철스님께 가 보라'고 하도 이야기해서 할 수 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래 어쨋든 잘 왔오. 들어보니 노인은 참 좋은 보물을 가지고 있오. 잠깐 앉아 있는데 모든 망상이 다 떨어지고, 몇 시간도 금방 지나가 버리니 그런 좋은 보물이 또 어디 있겠오. 내가 한가지 물어 보겠는데 딱 양심대로 말하시오. 거짓말하면 죽습니다.
그 보물이 꿈에도 있습니까?"
"(눈이 둥그래지며)꿈에는 없습니다."
"뭐, 꿈에 없다고? 이 늙은 놈아! 꿈에도 안되는 그걸 가지고 공부라고 선지식이 있니 없니 하고 있어? 이런 놈은 죽어야 돼.
하루에 만명을 때려 죽여도 괜찮아, 인과도 없어."
그리고 실제 주장자로 두들겨 팼다. 가만히 앉아서 맞고 있더라.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더니 자기 공부가 틀린 줄 알고서 다시 새로 공부를 배우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 영감이 살아있다. 80세도 넘었는데.
이런 병폐가 실제 많이 있다. 꿈에도 안되는 이것을 가지고 자기가 천하 제일인 듯 하고 다닌다. 여기 이 대중 가운데도 나한테 직접 덤빈 사람도 몇 있다. 요새도 그 병을 못 버리고 무슨 큰 보물단지나 되는 것처럼 걸머 쥔 사람도 있다. 이상으로 견성이라고 하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에야 성철스님이 큰 도인임을 알았네.
'깨달음이 깊은 잠에서도 있어야 한다.'
'공부의 첫단계, 動靜一如 즉 일상생활에서 오고가고 말하고 할때 항상 공부가 되는 경지.
두번째 단계, 夢中一如 꿈 속에서도 딴 짓하고 놀지 않고 공부가 계속 되는 경지.
세번째 단계, 잠이 깊이 들어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꽉 들어도 공부가 되는 경지.
이 상태에서 미세한 망상까지 완전히 다 끊어져 나아갈때 眞如가 들어나고 거기서 견성이 된다.
이게 참 견성이다.'
-0-;;
이 정도는 되야 8부능선정도 이른 거란다.
깊은 꿈속에서도 수도가 되어야 한다....헐~
대체 마음 모으기 공부의 끝이 어디인지...쩝!
정말 갈길이 멀다.
이번 삶에서 되려나?
어떤 거사님이 백련암에서 삼천배를 힘들여하고 성철스님을 친견하게 되었다.
성철스님은 당신을 친견하는 사람들에겐 불명, 화두, 원상(圓相)과 함께 일과(日課)를
주셨다. 삼천배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꾸준히 몸과 마음을 닦으라는 뜻에서 날마다
일정한 절과 능엄주 독송을 권하신 것이다.그것을 일과라 한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그 거사님은 생활이 바쁜 핑계로 일과를 지키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다시 백련암을 찾아 큰스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거사님을
알아보신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래, 거사는 일과하나?
그간 일과를 하지 못했던 거사님은 난감해졌다. 하지 않은 일과를 했다고 거짓말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안했다고 말씀드리자니 죄송스럽고 해서 딴에는 궁리해서 다음
과 같이 대답했다. "마음으로는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선 바로 되물으셨다.
"거사는 마음으로 밥도 먹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