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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교도소의 소름끼치는 실체 5 170510

수호자007 2021. 12. 13. 09:00

겪어본 사람만 아는 '실제 교도소'의 소름끼치는 실체 5

 

 

(좌) SBS '피고인', (우) 영화 '프리즌'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인 교도소는 매우 흥미로운 세계다.

우리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직접 알거나 체험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국가시설이기 때문에 지도상에도 표시되지 않는 곳. 과연 그 안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여주교도소에서 실제로 근무하는 한 교도관은 "드라마 '피고인' 속 교도소가 현실이라면 징계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법을 어겨 교도소에 수감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실제 교도소를 낱낱이 파헤쳐보자.

 

1. 건물 구조

 

SBS '피고인'

탈옥 및 교도소 내 각종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건물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우선, 교도소 건물 밖으로는 흔히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높은 벽인 '주벽'이 크게 둘러져 있다.

또한 그 밖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그보다 더 밖으로 철조망이 둘러져 있어 총 3차로 탈옥을 방지한다.

주벽 안에는 곳곳에 동작감지 센서와 CCTV가 설치돼 있다고 알려졌다.

건물 내부도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사동, 접견실, 운동장, 공장 등 다양한 공간이 존재하며

여러 구획 사이에는 두터운 담벼락과 철문이 있어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다.

이에 해당 교도소에 처음 근무하는 직원들은 초기에 자주 길을 잃기도 한다는 후문이 있다.

 

2. 생활 환경

 

영화 '7번방의 선물'

수감자들이 지내는 공간은 크게 독거실(독방)과 혼거실로 나뉜다.

독거실은 수감될 당시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 2차 사고를 낼 우려가 있거나,

혼거실에서 마찰을 빚어 혼자 생활해야 하는 수감자들이 가게 된다.

과거에는 독거실에 가두는 것이 '징벌'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심한 경우 0.4평 크기의 방에 수감자를 가둬 다리도 펴지 못하고 잠을 자야 했다.

독거실에서 지내고 나면 폐쇄공포증이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지만 현재는 약 1.9평 정도로 넓어져 비교적 생활 환경이 개선됐다.

혼거실의 경우에는 평균 4평의 공간에 4~5명의 인원이 생활하며 안에서 설거지, 샤워, 용변 등

모든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

 

3. 하루 일과

 

영화 '7번방의 선물'

교도소의 하루 일과는 군대와 매우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취침 전과 기상 후, 방 별로 점호를 실시하며 방장이라고 불리는 수감자가 총원, 열외, 현재 인원 등을

교도관에게 보고한다.

수감자들은 하루종일 방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실제로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노동을 하거나

운동장에서 체육 활동도 하며 꽉 찬 일과를 보낸다.

혼거실의 경우 수감자 간의 마찰이나 폭행, 가혹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방 안에서의 육체 활동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고 한다. 잠을 잘 때는 수감자의 서열(?) 순으로 취침 자리가 정해져 있다.

서열이 낮을수록 화장실에서 가까운 자리에서 잠을 자야 한다.

 

4. 서열

 

영화 '프리즌'

교도소 역시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감자 사이에서 서열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우선 해당 수감실을 대표하는 방장이 존재한다. 공식적으로는 나이순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전해진다.

수감 생활에 잔뼈가 굵은 수감자나 싸움 실력이 뛰어난 수감자 등이 방장으로 정해지며, 그를 보필하는 오른팔인 총무도있다. 일반적인 수감자들 이외에 교도소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른바 '관심죄수'도 존재한다.

이어 사형, 무기징역과 같은 중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들은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방식을 고집하며,

다른 수감자들도 이들을 간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법적 지식이 풍부하며 인맥이 좋은 수감자들은 흔히 '선생님'으로 불리며 많은 수감자들이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 학업

 

SBS '피고인'

교도소에서 출소 후 갱생을 위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검정고시나 외국어 자격증 등을 준비하는 수감자도 있으며, 이들을 지원해주기 위해 교도소 안에는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 있다.

지난 2012년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는 수형자 10명이 토익 900점을 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히나 당시 응시자 중 최고점인 965점을 받은 김모 씨는 살인미수로 징역 4년형을 받아 3년째 복역하던 중 토익에

응시했다.

김모 씨는 첫 토익 시험에서 500점을 맞았지만 이에 포기하지 않고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공부해 이같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달라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안에서 과거를 많이 반성했고, 출소하고 나면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말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180601 '감빵생활' 실상은…어느 서울대생의 수감기

감옥, 교도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가 좋은 것일 리가 없다.

그 부정적인 이미지는 준법의식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런 일관적인 이미지의 틈새에는 간혹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는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같은 책이 그렇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억압받던 시절 사회운동을 하다 체포되고 수감된 이들이 감옥 안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성찰하며

내면의 그릇을 키운 기록들은 감옥을 수도원 같은 이미지로 느끼게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큰 인기를 끈 TV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인간의 악하고 잔인한 면과 함께 척박한 곳에서 피어나는 인간애와 우정을 그려 감옥 생활의 낭만성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부분도 있었다.

최근 출간된 책 '감옥의 몽상'(돌베개)은 이런 기존 교도소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 책은 2010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실제 감옥 생활을 한 수감자가 쓴 담담한 기록으로, 이 시대 감옥의 현실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의 저자는 현민. 그는 이미 '소수성의 정치학', '모더니티의 지층들',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나를 위해 공부라하' 등

여러 인문교양서를 공저로 펴낸 바 있다.

그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와 동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20대 많은 시간을 인문학 연구공동체 '수유너머' 일원으로 보냈다. 지금은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소위 '엘리트'로 일컬어지는 그가 교도소에 수감된 죄명은 병역법 위반. 그는 정치적인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했다.

"나는 징병제가 개인에 부과하는 역할에 압박감을 느끼면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집단주의를 문제 삼고자 했다.

국가도 절대자도 아닌 감히 스스로에게 충실하기 위해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이다." (102쪽)

 

책선전잇구나 현민지음 감옥의 몽상 돌베개 출판사

재판에서 법정구속되지 않아 구치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교도소에 들어온 그는 적응기도 거치지 못하고 가혹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리바리한 신참에게 쏟아지는 구박과 욕설, 괴롭힘은 물론이고 그의 남다른 학력과 죄명, 점잖은 말투와 행동은 다른 수감자들에게 더 큰 혐오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게는 서울대를 나왔고 군대를 가지 않은 탓에 적응을 못한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우연한 실수나 사소한 부적절한

행동도 그렇게 해석됐다." (44쪽)

"내가 고수한 원칙도 무능함의 증거가 됐다. 나이 어린 사람을 '씨'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자신을 가리킬 때 '형'이란 주어를 쓰지 않고, 욕설을 입에 담지 않았다. (…) 이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고민이 아닌 사회성의 결여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감옥에는 "여기는 사회가 아니다"는 말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는 말이 공존하는데, 저자는 "현재 머무는 공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차단한다는 맥락에서만 두 문장은 연결될 수 있다"고 풀이한다.

감옥 안에서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인간들의 동물적인 행태도 흥미롭다. 무리에서 힘의 우열에 따라 형-동생으로 서열을 정하고, 그 서열에 따라 권력이 작동된다. 우두머리 격인 '빵잽이'의 횡포와 다른 이들의 복종, 자신들의 근무 편의를

위해 이를 눈감아주고 협조하는 교도관들의 모습은 한국사회가 지닌 전근대적 측면의 축소판으로도 보인다. 게다가

이 권력관계에서 형은 동생의 몸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친근함을 가장한 성폭력을 자행하기도 한다.

인문학을 오래 공부한 저자가 감옥 안의 사회 구조와 인간들의 속성을 꿰뚫는 시선은 날카롭다. 통찰력 있는 분석에

더해 저자 자신이 약자로서 당한 고통의 경험까지 생생하게 더해져 읽는 재미가 여간하지 않다. 감옥 생활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수준을 넘어 인간-사회 탐구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준다.

 

20091101

서신 폭로 고요하고 은밀한 여자교도소 실상

‘감방에서 또다른 징역 살고 있어요’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교도소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바깥사람들에게 교도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외부인들이 자세히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일부 출소자의 증언 등을 통해 재소자들 간의 기싸움과 그들 간의 서열,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 등은 어느 정도 드러난 사실이다.

놀라운 사실은 여성 재소자들이 수용된 곳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여자 감방도 철저한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고있으며 오히려 남자 감방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성 재소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악질적인 음해와 루머, 따돌림, 기상천외한 사기행각 등이 대표적인 예. 여자 감방, 그곳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현재 수감 중인 K 씨는 기자에게 “징역살이 자체보다 더 힘든 건 감방을 장악한 동료 재소자들의 악질적인 괴롭힘”이라며 “이로 인해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생각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K 씨가 기자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감방 안에서 동료들끼리 싸우다가 상처와 생채기를 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시비를 걸거나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대는 재소자로 인해 다른 재소자들의 불안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한다. 또 같은 동료들 간에도 강자가 약자를 마치 하녀 부리듯 한다고 한다.

K 씨는 서신을 통해 “감방 안에서 강자는 약자를 철저하게 지배한다. 외부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같은 재소자 간에 벌어진다. 감방은 교도소 내에선 또 다른 인권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특히 여자감방 내에서는 동료의 이간질과 음해로 한순간에 왕따를 당하고 ‘인간말종’으로 몰리는 일이 적지 않다. 졸지에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고 창녀, 꽃뱀, 거렁뱅이, 마약중독자, 사기꾼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힘없는 재소자들은 동료 재소자들의 괄시와 모멸감 속에서 인간취급도 받지 못한다. 또 영치금이 없거나 구매물을 사지 못할 땐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는 물론 동료들의 속옷까지 일일이 세탁해야 한다”고 폭로했다.

K 씨는 이 같은 일들을 ‘징역 속에 또 다른 징역’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러한 괴롭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K 씨는 “일부 ‘힘있는’ 여성 재소자들이 동료를 상대로 돈을 뜯어가거나 사기를 치는 등 교도소 내에서도 범죄가 버젓이 재생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동료에게 사기를 당해 영치금 또는 재산을 날리거나 어렵게 마련한 변호사 선임비까지 한순간에 뜯기는 일이 적잖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K 씨는 일례로 자신이 동료에게 당한 어처구니없이 사기사건을 털어놨다. 올 3월 감방 동료 A 씨는 “형사사건을 변론해줄 변호사가 필요한데 변호사 선임비가 없다”며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K 씨는 그의 이런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어느날 A 씨가 편지 한 장을 보여주면서 K 씨에게 “도망 다닐 당시 분당에 보증금 1억에 월세 350만 원에 살았다. 그런데 구속되는 바람에 월세를 못냈더니 주인이 밀린 월세와 관리비를 제외하고 5000만 원을 보내준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돈을 받으면 갚겠다며 변호사 선임비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K 씨는 영치금 50만 원을 박 아무개 변호사 통장으로 입금해줬다고 한다. K 씨는 또 비슷한 상황에 놓인 B 씨에게도 20만 원을 입금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A 씨와 B 씨는 돈을 갚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K 씨에 대한 온갖 악성 루머를 퍼뜨리면서 음해했다.

“이들은 한패가 되어 내가 찜질방에서 지냈던 거렁뱅이며 교도소 내에서 펜팔로 남자를 꼬인다고 떠들어댔다. 또 내가 남자를 유혹해 마약을 먹여 돈을 뜯어내는 질 나쁜 사기꾼이며 남자관계가 너무도 문란해서 나가면 언제 칼침을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등 악소문을 퍼뜨렸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간질을 해서 나와 동료들 간에 싸움을 붙이고 따돌림까지 당하게 만들었다”는 게 K 씨의 주장이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K 씨 혼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재소자 L 씨 역시 힘센 감방동료의 모함과 이간질 속에서 지독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L 씨가 기자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C 씨는 같은 방 식구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 외에도 이간질하는 것을 즐겼는데 한 사람을 생매장시키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평소 못마땅해하던 D 씨를 내쫓아야겠다고 생각한 C 씨는 방 사람들을 선동한 뒤 자신이 자술서를 작성, 동료들의 사인을 강제로 받아내 결국 D 씨를 쫓아냈다고 한다. 더 가관인 것은 이후 C 씨가 D 씨에게 “이 일은 모두 L 씨가 꾸민 짓”이라고 이간질을 했다는 점이다. 그 후에 L 씨가 당해야 했던 고통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영치금이 없어 D 씨 눈밖에 났던 L 씨는 이후 설거지, 청소, 속옷 빨래 등을 하면서 하녀처럼 살아야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흥미로운 것은 감방 내에서 ‘권력’을 쥐고 재소자들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의 특징이다. 몇몇 여성 재소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자 교도소처럼 안락한 수감생활을 하는 일명 ‘범털’이 여자 교도소에도 존재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E 씨. L 씨에 따르면 E 씨는 자신을 ‘1000억 원이 넘는 납골당과 필리핀 현지에 카지노를 갖고 있는 재력가’라고 떠벌리고 다닌다고 한다. 강남 모 유명호텔의 대주주이고 여러 개의 주유소와 전국 각지에 수 만 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고 스스로 입소문을 내고 있는 E 씨는 자신의 막강한 재산내역을 무기로 동료들의 위에 군림하는 동시에 담당 사소(수용시설에 밥과 온수 등을 날라다주고 인원체크, 서류전달, 청소 등의 잡다한 일을 하는 인물로, 재소자와 교도관들을 수시로 접하다 보니 교도소내 소식 및 사건에 정통함)를 회유해 온갖 편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L 씨는 “E 씨의 회유에 넘어간 담당 사소는 아침마다 E 씨에게 고구마와 삶은 계란을 가져다주고 얼음, 고추, 김, 무생채, 심지어 김치라면까지 만들어다 바쳤다. 담요와 침낭도 원하는 대로 제공했다. E 씨는 틈틈이 뇌물을 줘 사소를 매수했고, 사소는 E 씨의 하수인이 되어버렸다”고 폭로했다.

또 다른 수용자 P 씨는 감방 내 권력을 지닌 일부 재소자들의 범죄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동료 재소자들의 구매품을 빼앗거나 바깥사람에게 위임장을 부탁한 뒤 돈을 가로채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등 지능적인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감방 안에서는 물품교환과 구매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겉으로는 문제 없지만 사실상 눈속임에 불과할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교도소 직원들은 감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들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한다. 이와 관련 교도소 관계자는 “온종일 방 안에서 같이 생활하지 않는 한 모든 일을 다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런 일들은 교도관들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외부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설령 피해자가 어렵사리 교도소 측에 알린다 해도 결과가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방안의 다른 재소자들이 보복을 우려해 침묵하기 때문에 피해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몰려 더 큰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자에게 제보한 재소자들은 그간 몇 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면담을 요청해도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어쩌다 어렵게 면담을 해도 ‘그냥 참고 살라’는 형식적인 말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교도소 내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누설하면 불이익이 돌아올 게 뻔하지만 앞으로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폭로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20121126

전과 47범 "교도소보다 더 무서운건…" 충격진술

 

영화 <쇼생크 탈출>에는 탈옥에 목숨을 건 주인공이 등장한다. 무거운 철문 뒤의 바깥 세상에 그가 갈망하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교도소 재소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루빨리 감옥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이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회보다 감옥이 낫다”며 교도소행을 자처하는 범죄자들이다. 월간중앙이 집보다 교도소를 찾는 전과자들의

실태를 보도했다.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수감 생활은
더이상 고역이 아니다.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사진=중앙포토]

 

지난 8월 8일 새벽 4시 경기도 의왕시 근처의 한 식당이 소란스러워졌다. 구석에서 술을 마시던 한 50대 남성이 고함을 치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식당 주인의 만류에도 행패는 그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그는 옆자리 손님에게 “담배를 사오라”고 엉뚱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식당 주인은 돈도 안낸 그를 식당 밖으로 쫓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는 같은 날 낮에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일식집을

찾아가 술과 음식을 실컷 시켜먹고 “돈이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며 고성을 질렀다.

 

“나 감방에서 이제 나온 놈인데, 다 엎어버리고 죽여버릴 테니 마음대로 하쇼!” 그는 ‘출소증’을 꺼내 보이며 오히려 주인을 협박했다. “신고할 테면 해봐. 난 무서울 게 없는 놈이니까.”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던 그는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그는 출소한 지 12시간 만에 ‘무전취식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또다시 구속됐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수서 경찰서

형사과 안태수 경위는 “만기 출소하였음에도 동일한 범행을 저질렀기에 구속수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이런 수법으로 실형을 받은 적이 있는 상습범이었어요.

습관적으로 범죄를 저질러온 셈이죠.”

 

출소한 지 하루 만에 다시 ‘감옥행’

그는 1996년부터 무전취식·사기·절도 등을 일삼아온 전과 47범. 그동안 감옥을 무려 11차례나 들락거렸다. 범죄 후 재입건되기까지 걸린 기간도 대부분이 6개월~1년 미만이었다. 안태수 경위는 “무연고에 주거도 부정확한 터라 출소 후에

오갈 데가 없자 범죄를 저지른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감옥에서) 나왔는데 돈도 없고, 갈 곳이 없어 그랬다”고 진술했다.

지난 7월 29일 경남 창원교도소에서 출소한 30대 B씨 영화도 출소한 지 1주일 만에 경찰에 구속됐다. 창원서부경찰서에 따르면 교도소를 나온 B씨는 식당에서 술값을 지불하지 않고 욕설 퍼부어 식당 영업을 방해한 혐의다. 그 역시 과거 동일한 범죄로 1년을 복역하고 나온 터였다.

그는 경찰 진술에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차라리 감방에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갈 데도 없고, 연락하고

지내는 가족도 없었다. 게다가 교도소에선 먹고 자는 문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출소한 지 얼마가 되지 않아 또다시 교도소행을 자청하는 범죄자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를 내긴 어렵지만

A 교도소의 한 교도관은

현재 수감 중인 전체 재소자 300명 중 대략 5%가량이 고의적인 범행으로 교도소를 찾은 범죄자들”이라고 말했다.

 

경찰이나 교정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교도소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전국 50여 개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 4만여 명 가운데 약 2000명이 ‘고의적인 범죄자’인 셈이다.

상식대로라면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도 ‘통제’와 ‘감시’를 꺼려야 함이 마땅하다.

 

10년 넘게 수감자들과 함께 생활했던 전직 교도관 B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수감자들은 ‘감옥에서 사는 게 차라리 편하다’고 말해요. 밖에 있어봤자 갈 곳도, 할 것도 없는데 교도소에 가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과자’라는

눈총을 받고 고생하며 살 바에야 주는 밥 먹고, 시키는 일 하고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죠.”

그는 “그런 수감자를 심심치 않게 봤다”면서 “그들은 구치소나 교도소를 일종의 ‘도피처’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수감자들이 감옥생활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가족, 친구 등과의 ‘단절’ 때문이다. 하지만 무연고인 사람은

교도소 밖이나 안이나 홀로 지내는 게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교도소 삶이 큰 단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수감자와 함께 생활하는 교도소 안이 이들에겐 덜 외로운 장소일지도 모른다.

 

지난 10월 출소 한 달 만에 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받은 30대 중반 김모 씨도 그랬다.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나와 처음 며칠은 여기저기 일자리도 찾아보고, 잘 살아갈 방법도 궁리해보았다.

그러나 친구도 가족도 없는 그가 비빌 언덕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용직 근로자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갈 바에야 차라리 교도소 안이 몸과 마음 모두 편하리라 생각했다. 그는 출소 후 한 달 동안 총 4차례에 걸쳐 불을 지르고 다시 수감됐다. 그에게는 교도소가 ‘삶의 터전’이었다. 바깥에선 ‘전과자’의 낙인을 갖고 살아가야 하지만 철창 안에서만큼은 ‘돈벌이’

염려 없이도 이러한 시선에서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지난 8월 출소 12시간 만에 재구속된 50대 남성 이모씨도 마찬가지다. 교도소를 벗어난 떠돌이 생활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감생활이 더 좋지는 않았다. 처음 감옥을 나왔을 때는 ‘하루벌이’라도 하며 살아보려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정의 보호를 받거나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있어 보지 못했던 그가 사회 생활을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이제껏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무전취식하고 물건을 훔치며 살아왔을 뿐이다.

‘처음부터 감옥이 좋아 감옥에 가려는 범죄자들은 없을 거라고 봐요. 다만 사회에 나와 자꾸 떠밀리고 ‘전과자’로 불리게 되다 보니 결국엔 자포자기하게 되죠. 이런 게 반복되다 보면 바깥보단 교도소 생활이 편해지는 거고요.” 절도죄로 과거 여러 차례 복역한 경험이 있는 한 40대 전과자의 말이다.

 

그는 교도소행을 자처하는 범죄자들의 심리에 쉽게 공감했다. 몇 년 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된 그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진 사회생활이 버거워 몇 번이고 ‘교도소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해 온 무연고 출소자였다.

출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민간갱생보호시설 담안 선교회의 임석근 목사도 “이런 범죄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출소자들과 생활해오며 그 동안 사회 적응에 실패해 교도소를 다시 가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봤어요.

물론 출소자 개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전과자를 보는 사회의 편견 속에서, 그것도 무연고에 오갈 데 없이 살아온 출소자들이라면 사회 적응이 더더욱 쉽지 않죠.”

 

그는 한 출소자의 사례를 들려줬다.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강한 의지로 일자리를 찾았지만 근무한 지 얼마가 지나지 않아 회사 내에 절도사건이 벌어졌고, 전과가 있던 그 출소자를 모두 의심해 결국엔 불이익을 당했다는 얘기였다.

“‘전과자 딱지’는 평생 출소자들을 따라다니죠. 본인의 의지만으로 사회에 적응하기는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출소자가 개선의 의지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사회생활 능력이라도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교도소행을 자처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사회생활 자체가 어려운 일종의 ‘사회적 장애인’이다. 가정의 보호는 물론 정규교육 과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떠돌이처럼 살아온 탓에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임 목사는 “글도 모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모르는 애들이 많다”면서

“그러다 보니 교도소 안을 차라리 편하게 여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교도관이나 갱생보호시설의 관계자들도 이런 범죄자들을 ‘비사회적 성격장애자’로 불렀다. 한 교도관은 그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서 “기본적인 사회 적응능력이 없다 보니 반복해서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팀이 실시한 전문신경심리기능검사에 따르면 상습절도범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스스로의 감정 조절과 행동 억제,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담당하는 사회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나타났다.

경제적 궁핍, 사회적 편견 등은 물론 부족한 사회 적응 능력이 이들을 교도소 안으로 몰고 가는 셈이다.

 

사회에선 ‘전과자’, 감옥 안에선 ‘모범수’

바깥세상이 버거워 교도소행을 택한 이들은 무전취식이나 절도 등을 일삼는 ‘잡범’이 대부분이다. ‘교도소행’자체가 목적인 이들은 성범죄자 등 범죄행위에 중독된 범죄자들과는 다르다. 사회에선 오갈 데 없는 전과자지만 교도소 안에선

수감 생활에 잘 적응하는 ‘모범수’가 많다고 한다.

그만큼 교도소 생활에 익숙하고, 다른 수감자들처럼 바깥 생활을 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보다 개선된

교도소 환경도 이들의 수감 생활을 돕는다.

 

현재 국내에는 교도소 33개와 구치소 10개를 포함해 모두 47개의 교정시설이 있다. 강력범들이 주로 모여있는경북북부교도소(옛 청송교도소)와 천안개방교도소, 민영교도소 등 성격에 따라 교정시설이 구분되기도 하지만 의식주 등의

기본 환경은 모든 교도소가 거의 유사하다.

법무부 교정시설 관계자는 “시설의 낙후 정도에는 차이가 있고, 재소자의 비율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의식주 환경은 모든 교도소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바깥세상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던 이른바 ‘범털’이 아닌 경우 대부분은 감옥에서 먹고 자는 일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교도소 생활이 편해 교도소에 들어온 범죄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전직 교도관 B씨는 “‘끼니 때마다 밥 먹을 수 있고 겨울에도 걱정없이 잘 수 있는데 이보다 좋은 생활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재소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교도소 내에 콩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교도소 내 급식관리위원회 소속 식품영양학 교수들의 지침에 따라 1식3찬의 식사가 제공되며, 옷차림이나 두발 등 엄격했던 생활규율 기준들도 완화됐다.

흔히 교도소 안에서의 삶을 사회와 완전히 단절되리라 여기지만, 사실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지도 않는다. 천안개방교도소는 외부업체와 연계해 현장에서 직원들과 같은 옷을 입고 일하고 일정 금액의 노임을 받기도 한다. 교도소 내에서 노역해도 일정 액수의 노임을 받는 건 동일하다. 노역의 대가론 휴식시간도 제공된다. 여기에 기결 수용자의 경우 누진제의 적용에 따라 최대 월 6회 면회도 가능하다.

 

더구나 재소자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분위기때문에 과거에 비해 재소자들의 수감 생활이 수월해진 측면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교도관들이 거꾸로 재소자들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실제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재소자가 국가기관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건수는 지난해 1만319건으로 2003년(1988)보다 20배나 증가했다.

정보공개 청구는 재소자가 교도관을 괴롭힐 때 사용하는 수법으로, 재소자들은 한꺼번에 수십 건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정보공개로 청구해 교도관 등이 진땀을 빼도록 한 뒤, 이를 취하하기도 하면서 수용생활 편익을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교도소나 구치소 수형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자 도입된 ‘수용자 정보공개제도’가 수형자가 교도관이나

교정 당국을 골탕먹이는 방법으로 활용된다는 얘기다.

 

한 교도관은 “기본권을 주장하며 교도관들의 애를 먹이는 재소자들이 있어 어떨 땐 통제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마디로 ‘배 째라는 식’인데, 반찬 투정은 기본이고 처우가 조금이라도 안 좋다고 여기면 인권위에 접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재소자가 있다”면서 “소수긴해도 내부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재소자들의 수감 생활이 이전보다 수월해진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가석방의 혜택도 달가워하지 않는 수형자도 있다”고 한 전직 교도관은 말했다.

“출소하는 날 늦장을 부리는 건 기본이고, 어떤 재소자는 철문 밖을 나서면서 ‘곧 다시 오겠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먹고 잘 염려 없이 지내는 철창 안의 삶이 이들에겐 큰 구속이 아닌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