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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와 건달 100년 2013년 2월 8일 금요일

생활상식

by 수호자007 2013. 2. 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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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정리중)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이성순 일명 시라소니 특기 공중걸이 박치기
김두한 일명 잇뽕(한방) 특기 어깨짚고 양발차기
이화륭 일명 검은신사 50년대 명동 충무로의 황제
이정재 일명 마렌코프 한국의 두산만을 꿈꾼 정치깡패
유지광 한국의 조직의 귀재
조양은 양은파 두목 50년생 3새대 주먹 선두주자
김태촌 49년생 서방파 두목 특기 칼쓰기
한시대를 풍미한 주먹들
건달은 불한당
옛날은 협객, 평화는위하여는 사회악 시각은 다양
협객, 양아치, 깡패, 조직깡패
권력과 주먹의 관계

구한말 마포나루
도강세 뱃삭을 받음(현품과 돈을 받음)단 관리와 어린이는 무료 허허
우시장 보험요금 받음
오강의 석전꾼, 필도의 역사, 부상군(등짐장사) 이용 만민공동회 파괴의 댓가는 은화 1 황실에서는 사적라인 동원 오강의 석전꾼(정월대보름의 돌팔매)
흥선대원군 집권정치 시정잡배 천하장안
천희연
하정일
장승규
안필주

구한말 권력 조직 협착됨
본격적인 주먹은 일제의 문물들어오면서 시작
종로 상가의 중심 우미관 앞

1930년 일본 명동 충무로 하야시
서대문김기환 왕십리김남산 마포 정춘식 핌이장사 구마적 조로쌍칼
신마적 대학생 엄동욱

일본은 극장과 술집 우미관의 주인도 일본 신변안전용으로 채용 조선주먹 김기환
김두환 우미관에서 물건파는 꼬봉 써커스단 출신 단칼의 명수 리돌린의 마사시를 보디가드로 채용
성격 과격하여 부하신망 잃음 김두한 싸움에서 물려남
김동회 1새대 주먹 우리도 같은 남자지만 탄복할 정도야 그사함이 힘이 장사가 아니라 몸이 그렇게 빨랐어
어깨만 턱 짚으면 벌써 붕 터가지구 상대방 양쪽 발루다 탁탁 치구서 벌써 한번 맞으면 벌서 뚝 떨어지니까
그만큼 동작이 빨랐어

이상욱 1세대 주먹 별명이 뭐였습니까 한방이에요 한방이면 그냥 가니까

종로평정 김두한 약관 18세 명동과 종로의 경계 수표교 본정3정교(현 충무로 3가)  

하야시 식객 40명 한국분 평안도 사람이야 선우영빈 한국으로 하면 선우 영빈이야

일본말로 창씨를 하야시지 그양반이 어려서 일본을 들어갔어

부모를 따라서 그래 가지구 일본서 모든걸 배웠어 일본서 선장하면서

일본 그 즉 말하자면 야쿠자, 두산만이 두산만이 밑에서 일을 봤단말이야

두산만(도호야마미쓰루)

정무부장(정무총감)이 그사람이 이제 지금 그총리나 마찬가지지 그사람도 하야시가 부르면 와

저녁이면 술자리 같이 하구 놀다 가요 그럴정도로 파워가 있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지금 뭐 서장정도는

문안 안올수가 없는거지

하야시가 김동희에서 양복점 지금 예를 들어서 양복점 같은거 할라면 몇 억을 둬야 하나 차릴 거 아니겠어

그때도 이제 액면은 적지만 그런 정도의 뭐를 하나 차려서 이제 나를 식생활은 자연적으로 해결이 되잖아

자기가 나를 안도와줘두 그러니까 지기 일 봐줄수 있는거지 그렇게 안정을 시켜놓고 하니까

당연히 그형님의 말을 안들을 수가 없지

당시 우미관 자리(현 종로구 관철동) 종로꼬마 이상욱 지금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꿈만 같지요

멋이 잇었어요 그럼 그 당시에는 멋있었어요 젊은 시절의 이상욱(종로꼬마)

김동회의 말 김두한은 돈 들어오면 그날로 다 나가는 사람이야 자기가 어디갖다 저금을 하거ㅓ나 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날 얼마가 들어오든 그날로 다 없어져 왜 그러냐 요정에 술 먹으로 가잖아 김두한이 왔다고 이가씨들이

얘길 들으면 전부 와 버려 왜 그러냐 팁을 상사오 못하게 많이 주더든 그사람 돈 쓰는 기질이 그거야

어쩌다가 내가 갈 것 같으면 김두한이 오고 뭘 건네고 그래요 아무때나 그러진 않고 한달에 한번쯤 이렇게 순시를

하면 정해진 날짜가 있었겠지 그러면 뭘...이상욱 네 받았어요 술집에서는 그리고 거기 야시장에서는 안 받았지

야시장은 안 받앗어요  네 걔들한테는 뭐 일절 받아먹고 일보지 않았으니까...

하야시와 김두한의 차이는 자금력의 차이 김두한은 협객 일본의 유도왕 마라오카와 싸움에서 김두한 조선제일의

협객 김두한이요 소개 협객은 정의편에 서서 약자를 위해 싸우는것 김두한한테 부탁하면 거절하는 법이없다

어떻게 하든 해준다

자신의 관리구역의 싸움 김군 보아라 장춘단에서 각 40명 싸움 하야시는 칼 조선의 주먹은 삽, 곡캥이 맨손으로

이상욱 그때 많이 다치셨겠어요 네 여기도 되게 찔렸어 여기 이쪽으로 관총했거든요 그래가지고 개들이 이기다가도

우리한테 질것 같으면 달아나고.... 인근경찰투입 싸움은 중단 지금 중앙우체국 앞에 그전에는 거기가 자전거가

수백대 이렇게 있었어요 그때는 저전거 밖에 없었으니까 자동차라는 건 몇 대 없었고 그거 한 대 맡기면 예를

들어서 10원을 받든 100원을 받든, 수입이 거기가 노다지야 거기가 그노다지를 우린 줬으니까 두한한테 넘겨줬어

니가 운영해라 표시로 그거 해주쇼 내가 원했고 그래서 형님, 동생이 된거야 김두한하고 하야시가 형님, 동생이 되가지고

술자리도 같이 나누고 그때부터는 완전히 친해졌지  김두한과 하야시가 영구적인 평화협정 맺음

하야시의 권력의 우산과 이권을위하여 또한 하야시하고 친해지니까 이제 일본경찰의 단속도 덜해졌겠어요

예 맞아요 1941.12.8. 태평양전쟁 발발 1948년 야기 마사오(총독부 경무과장)이 김두한에게 반도의용정신대

의견 징용안가기 위해 타협 김동희 말 영등포 광목을 거져왔지 그래가지고 그당시에 그때 돈으로 한 50만원정도

돈을 만든걸로 내 기억이 나요 어디에쓰셨어요 이제 거 기환이 형님 십만원 두한이 십만원 내 몫 십만원 내놓고

다 나눠주고 그렇게 하고 나니까 한 오륙만원 남더라구 이제 그거 가지고 술먹르로 다닌거야

김동회 해공(신익희)선생이 니들 그러지 말고 단체를 하나 만들어라 뭐 단체를 만들려면 돈이 없잖아 장소도 잇어야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장소는 내가 주마 사무실 그게 운현궁을 그냥 정해준 거야 그양반이... 대한민청 별동대

그당시에 경무부 조병옥박사 또 장택상씨 수조청장 이제 저는 우리하고 목적이 같으니까 우릴 도와줬지 한달에

그때 돈으로 천만원씩 보내줬어 우리한테  대한민청의 조직와해 1947.4.19. 명동의 한 음식점 김두한과 정진용 화해의 자리

마련됨 의견대립 다음날 시공관(서울제일의 극장)에서 4월20일 제일선이라는 악극단이 봄타령을 선전하고 정진용측이 경비

이사실을 안 대한민청은 정진용과 부하들을 납치 정진용과 2명사망 1명 부상 대한민청은 자진 미군재판에서

김두한은 교수형 신현균비롯 6명은 종신형 1948년8.15.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공로를 인정받아 석방

김동회 우리가 나쁜 맘 먹었으면 이박사 몰아내는 것도 시간문제지 막말로 노인넨데 그렇지만 우린느 하늘같이

그분을 우러러 봤고 믿었고 그야말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우리가려운데 안봐주면 서운한 생각이 들어가지 인간이기 때문에

1세대주먹을 낭만파 주먹 즉 연장(칼등)금지 오직 주먹만으로 6 25이하 2기 516이후를 3기

 

사랑과 키스 명예와 주먹 돈과 똥

감히 사랑앞에 수식은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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