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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계곡 임도와 미수허목선생님 2014년 2월 2일 일요일

여행맛집

by 수호자007 2014. 2. 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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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달천계곡 임도 사랑하기

 

 달천주차장에서 함안경계(달천고개)까지

     * 달천주차장에서-함안경계(달천고개)3.4km 왕복은 6.8km

     * 함안경계에서 천주산까지는 0.4km 같은코스로 회귀하면 7.6km

       - 중도에서 되돌아 옴 다음기회로 체력보강과 맑은 기운 마시기로 자주 애용 계획

       - 설연휴 달천계곡 가족운동 3인 도후는 제외

       - 오후 3시정도 콧바람.... 가족끼리 운동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 나무의 향기와 시원한 공기, 풍경

 

달천계곡 주차장 옆 달천농장

 

주차장 중 윗쪽주차장에 소가 타는것을 정차

 

 

주차장

 

주차장에서 달천계곡 초입 트럭가게

 

달천계곡 도로  좌측이 주차장

 

 

 

 

화장실 이곳에서 볼일 편리함  윗쪽 정자 화장실은 작은규모로 심리적으로 불편

 

 

좌측이 오토갬핑장  일일 15,000원 승용차와 상점, 텐트자리 제공(밑바닥 나무로)

설 연휴도 몇 분 있네요 후후

 

 

 

 79번도로 화천교차로  북차원 ic 1045지방도 

 

 

 

훈님이 연휴에 강행군으로 후후  중도에서 주차장으로 복귀

 

 

 

주차장에서 기준으로 하 위치

 

달천계곡 행사시 행사장 맞은편은 오토갬핑장

 

갬핑장이 상하로 구분되어 위치 본위치는 상

 

임도에서 본 상 캠핑장

 

상 캠핑장 계곡부분 다리

 

칡이 소나무를 뱀처럼 감고있네요  음 손을 봐주야 하나...

 

미수 허목 선생님 비

 

문정공 미수 허선생 유적비 

1641-1645년 사이에 달천동에 기거 추정됩니다.

 

이사진이 옛것으로 추정됨 누군가 탁본도 뜨고했네요

 

 

 미수 허목선생님(국제평화포럼11.6.)

허목(許穆)은 1626년(인조 4) 유생으로서 동학의 재임을 맡고 있을 때 생부인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을 국왕으로 

추숭하려는 인조의 뜻을 지지한 박지계(朴知誡)의 이름을 유생 명부에서 지우는 벌을 가했다가 과거 응시를 금지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과거와 벼슬에 뜻을 접고 

광주 자봉산(紫峯山)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1641년 다시 사천으로 옮겼으며, 그뒤 창원·칠원(漆原) 등지로 전전하다가 

1646년 마침내 경기도 연천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허목(許穆)이 창원 달천계곡에 기거하면서 계곡암반에 

달천동(達川洞)이라 각자한데서 달천계곡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또한 허목(許穆)이 낙향하여 지낼 때 손수 거북 모양의 돌을 깎아 넣어 우물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달천구천(達川龜泉)이 아직도 창원에 남아 있다. 

1650년(효종 1) 이후 정릉참봉·내시교관·조지서별좌·공조좌랑·용궁현감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거나 곧 사직하였다.

1657년 공조정랑 겸 사복시주부를 거쳐 1659년에 장령에 임명되자 상소를 올려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의 정책에 

반대하는 등 중앙 정부에서의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한 후 경연에 참여하였으며, 이듬해 다시 장령이 

되었다. 이때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趙大妃)의 복상 기간을, 서인 송시열 등이 주도하여 1년으로 한 것은 잘못이므로 

3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송(禮訟)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목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일로 허목은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 그 후 허목은 삼척에서 향약을 실시하고 읍지를 편찬하였다.1674년 효종의 비가 

승하하였을 때 조대비의 복제를 송시열 등이 주장한 9개월복 대신 기년복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승리하고 

남인이 집권함에 따라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75년(숙종 1) 산림직인 성균관 좨주를 비롯하여 이조참판·우참찬·이조판서 등을 거치고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이때 왕통을 문란하게 했다는 송시열의 죄를 엄하게 다스릴 것을 주장하여, 온건론자인 허적(許積)이 이끄는 탁남(濁南)에 

대비되는 청남(淸南)의 영수가 되었다. 1676년 사직하고 특명으로 기로소에 들어간 후로는 허적의 전횡을 비판하는 

격렬한 상소를 올렸다.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남인이 실각할 때 관작을 삭탈당하고 학문과 후진양성에 몰두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에 있으며 

경기도 연천의 미강서원(湄江書院), 

전라남도 나주의 미천서원(眉泉書院), 

경상남도 창원의 회원서원(檜原書院)에 봉향되었으며시호는 문정(文正)이다.허목은 퇴계 이황에서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에게 연결시킴으로써 기호 남인의 선구이자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되었다. 사서나 주희의 저술보다는 오경 속에 담겨 있는 원시 유학의 세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 진한(秦漢) 

이전의 문물에 대한 탐구는 문자에도 적용되어 특히 전서(篆書)에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다.저서로 동사(東事), 경설(經說), 

기언(記言), 경례유찬(經禮類纂), 방국왕조례(邦國王朝禮) 등이 있다.
김민수 기자 ssk0102@hanmail.net


파이팅

달천동 각자(천부인권 브로그에서 스크랩)

천주산 정상에서 달천계곡을 끼고 축제를 여는 장소로 내려오는 임도 옆 활짝핀 벚꽃나무 아래에 세워진 미수 허목 선생의

 흔적이 있는 비석을 만났다. 예전에 왔을 때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1매석만 있었지만 지금은 비희가 지고 있는 비석1매가

더 세워졌고 밖은 화강암으로 경계를 만들어 두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의 정면에는 「문정공미수허선생유지(文政公眉叟許先生遺址)」라 새겼고

뒷면에는 「무인 시월 일달천계(戊寅 十月 日 達川契)」라 새긴 것으로 보아 1938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앞면의 폭이 50cm, 옆면의 폭은 19cm이며, 높이는 168cm이다.

 

아예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비석이 있는 곳까지 왔다. 그러면 비석을 여기에 세운 것이 달천동 각석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고

계곡을 오르니

비석에서 불과 10m여 거리의 계곡 바닥 돌에 새겨두었다.

 ‘達川洞’이란 3자의 전체 길이는 174cm이고, 達 54cm, 川 54cm, 洞 44cm의 힘이 넘치는 해서체가 새겨져 있다.

옛 사진에는 洞자가 완벽했지만 지금은 훼손된 흔적이 있다. 오른쪽에는 먹을 갈았다고 전하는 장방형의 벼루 홈이 남아있다

 

 - 안내판 하나없는 달천동 각자 

비석 뒷쪽(스크랩)

 

창원시 북면 외감리 새터 마을의 달천정 옆에 마련된 우물 달천구천의 모습이다.

달천구천은 조선 후기 학자 허목이 만든 우물로 큰 돌을 이용해 만든 사각형의 모양에 우물 한쪽에는

널찍한 큰 돌을 얹어 놓았는데,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하여 달천구천이라 불린다. ⓒ디지털창원문화대전 
성격   우물
건립시기/연도   1680년대
관련인물   허목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외감리 868
관리자   창원시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32호
문화재 지정일   1975년 2월 12일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외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허목이 만든 우물.
[개설]
허목(許穆, 1595~1682)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이고, 호는 미수(眉叟)이다.

제자백가와 경서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밝았다. 저서에 『경설(經說)』·『동사(東事)』 등이 있다.

달천구천은 허목이 고향에 돌아와 달천계곡의 새터 안 달천정에 머물 때 손수 만들었다고 전한다.

1975년 2월 1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천주산 북동쪽 자락의 외감리 초입에서 서쪽으로 900m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여 2㎞에 걸쳐 흐르는

달천계곡의 달천정 옆에 있다.
[형태]
큰 돌을 이용해 만든 사각형의 우물로 우물 한쪽에 널찍한 큰 돌을 얹어 놓았는데,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하여

달천구천이라 불린다. 전체적으로 우물은 지표면과 비슷한 높이로 만들어져 있으며 우물 속의 깊이도 매우 얕다.
[현황]
달천구천이 위치한 달천계곡에는 허목이 바위에 썼다는 ‘달천동(達川洞)’이라는 글이 남아 있다.

달천구천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며, 지금까지도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달천구천이 위치한 달천계곡은

숲이 우거지고 깊지 않은 작은 소(沼)가 여러 군데 있어 가족 단위 물놀이와 야영에 적합하다. 계곡 초입부터 봄이면

수백 그루의 벚꽃과 진달래꽃이 주변 천주산을 물들여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에서는 해마다 진달래축제를 열고 있다.

주변에는 마금산온천·성산 패총·주남 철새 도래지 등의 관광지가 있다.


미수허목선생의 글씨

 

 

 

 

 

 

 달천구천 위치 창원시 북면 외감리 868

 

달천구천 위치

 

 현 코스가 도로가 약간 넓은도로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임도 정자와 화장실 안내판 있는곳

 

안내  주차장에서 정자까지 1.7km

 

 

 

정자 위쪽에서  우측은 화장실 

 

 

정자에서 윗쪽으로

 

 

임도 우측 너들지역

 

 

 

 

좌측은 임도로 계속 연결 직진은 .... 임도의 어느부분과 만남  차후확인

 

 

 

임도쪽으로 좌측은 오솔길은 정자 화장실길과 연결됨

 

 시멘트길에서 흙길과 경계지점  훈이...  일단은 주차장쪽으로 차후 함안경계지점(달천고개)까지

 

내려오면서

 

 

정자쪽 화장실

 

정자와 다리

 

정자다리에서 주차장쪽 계곡

 

주차장 먼지 털이지점  후후 오랜만에 구두속 대청소 왠 이물질이 많은지  신발은 구두로 산보정도로 생각함

 

북면온천으로 이동하여 뼈다귀해장국 2개 14,000원  설연휴라 한산한 편 보통은 점심시간에 북적하는데....

 

 

 

 

 

 2014.2.9. 일요일 달천계곡 

     - 주차장에서 임도로 함안경계까지

        하산시는 산길로 하산(단축, 길은 험한편, 경치는 양호)

 

주차장 부근 화장실 양호

 

달천동 각인 부분

 

 

비석에서 윗쪽

 

 

비석윗 길에서

 

 

다리에서

 

 

 

 

 

 

 

 

 

 

 

임도에서 출발하여 계곡을 근접 도보 후 임도로 나오는길 혹인 내려오는 길에서 계곡쪽으로 하여 내려가는 길

 

 

 

 

약수터

 

 

 

 

 

 

 

 

좌측은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길

 

 

 

 

 

 

 

 

 

 

 

 

 

 

 

 

 

 

 

 

 

 

 

 

 

함안경계에서 임도가 아닌 산길로 하산하는 들머리

 

 

 

 

바위산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임도길이 선명

 

 

 

 

 

 

 

 

 

 

 

 

 

 

 

 

 

 

쭈꾸미 집에서 본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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