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담쟁이(스크랩)
중부지방에 200㎜가 넘게 비가 왔던 지난 휴일, 부산에도 아침부터 빗줄기가 오락가락했습니다.
비는 대지에만 내리는 게 아닙니다. 보는 이의 가슴에도 선을 죽죽 그려 놓습니다.
마음 깊은 곳이 푹 젖습니다. 까닭 모르게 속이 헛헛해집니다. 마침,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수제비 한 그릇 하러 오셔." 황룡사(052-238-1216·울산 울주군 서생면 위양리 1091의 1) 주지 금해 스님의
전화였습니다 그는 어릴 적 출가해 50년 가까이 부처가 되는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황룡사는 그가 10여 년 전에 안착한, 작은 절입니다.
1시간은 좋이 걸릴 거리나 주저 없이 일어났습니다. 좀이 쑤셔하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좋아라 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데리고 말입니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했습니다. 점심 전에 도착하려면 조금은 서둘러야 했습니다.
마침내 도착. 그런데 스님은 절 밖 텃밭에 있었습니다. 수제비와 함께 찬으로 먹을 채소는 직접 따 가자고
했습니다. 가지, 오이, 고추, 토마토…. 아들 녀석은 커다란 오이 하나를 직접 땄습니다.
한 상이 차려져 나왔습니다. 수제비와 김치, 텃밭에서 따온 고추와 오이. 거기에 전을 하나 곁들인, 그렇게 소박한 한 상입니다. 밖에서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려 합니다. 수제비도 수제비지만 뜨끈한 국물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거, 독특합니다. 구수하면서도 진한 그 무엇이 혀끝에 남습니다. 다시마나 멸치만으로 낸 보통의 육수와는 느낌이 다릅니다. 평소 입이 짧은 아들 녀석이 웬일인지 한 그릇 뚝딱 비워 냅니다.
바로 담쟁이덩굴의 향과 즙이 배어든 것입니다. 황룡사에선 음식을 만들 때 이렇게 담쟁이덩굴로 육수를
만들곤 한답니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사람 몸에 좋다는 이유에서랍니다. 음식의 육수나 차로 끓여
상시 마시면 사람 몸에 찾아 오는 이런저런 질병들을 예방하거나 치유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담쟁이덩굴의 효과에 주목해 왔는데, 이를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고민이 깊었다고 합니다. 그는 담쟁이덩굴에 대해 이리 말합니다.
"다른 말로 '지금' '상훈' '벽려' 뭐, 그렇게들 불리기도 합니다. 예부터 우리 민간요법에 많이 썼던 겁니다.
당뇨나 어혈, 근육통 푸는 데 좋습니다. 중국 옛 의학서에도 나와요, 좋다고. 열매도 약으로 쓰기는 하지만 저는 줄기를 잘게 잘라 그늘에 말려 씁니다. 흔히 담벼락이나 바위 같은 데 붙어 사는 놈들을 생각하는데, 사실 담쟁이덩굴은 200년도 넘게 살아요. 깊은 숲속에 가면 커다란 소나무나 참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놈들이 있습니다. 오래된 것은 어른 팔뚝보다 굵어요. 약으론 그런 놈들을 써야 합니다. 소나무나 참나무의 기를 빨아들인 놈. 바위 따위에서 자란 것들은 독성이 있어 안돼. 그런데 그런 놈들 찾기가 어려워. 깊은 산속에 가야 겨우 찾을까. 찾아도 소나무 같은 것에 꽉 붙어 있는 놈을 떼어 내려면 엄청 공을 들여야 해요. 아마 그래서 시중에서 약재로 쓰기 어려웠던 것 같아. 그래도 사람 몸에 좋은 거니 누군가는 먹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해서 제가 음식에 이용하기도 하고, 차도 만들고, 술도 빚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 절 입구에 약사전(藥師殿)이 있지요?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겠다는 약사여래의 서원을 본받고
있다고나 할까. 하하."
담쟁이덩굴 술. 사실 금해 스님을 알게 된 건 이 담쟁이덩굴 술 때문이었습니다. 한 지인이 "
당신 술 좋아하니 맛나고 몸에도 좋은 술을 소개해 주겠다"며 데려간 곳이 황룡사였던 겁니다.
처음 맛 본 담쟁이덩굴 술은 맛이 달면서도 무거웠습니다. 언뜻 고급 몰트 위스키를 떠올리게 하는 색과 향은 맑고 깊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30도가 넘는 것인데도 목 넘김은 부드러웠습니다. 금해 스님은 담쟁이덩굴 중에서도 제일 굵고 좋은 것으로 술을 담근다고 합니다.
"스님이 무슨 술인가?" 하고 의아스러워 하니, "취하고자 마시면 술일 테고, 병 고치고자 마시면 약일 테고, 맛보자고 마시면 음식일 터!"라며 받아 넘기는 품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가 생활하는 요사채 뒤뜰엔 담쟁이덩굴 술이 숙성되고 있는 단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3년이
넘은 것도 있답니다. 단지 뚜껑을 열어보니 싸한 향이 올라왔습니다. 그 속에 정갈하게 다듬어진 담쟁이덩굴 줄기가 술에 익어가고 있더군요. 담쟁이덩굴을 담그는 술은 시중에서 파는 일반 담금술을 쓴답니다. 그 외 다른 것은 넣지 않는다고 합니다. 담쟁이덩굴이 본래 달고 따뜻한 성질이 있어 술이든 다른 음식이든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맛을 낸다는군요. 그래도 혹 남 모르는 비법이 있을 것 같다고 하니, 역시 웃어 넘기고 마는 스님입니다.
술단지가 여남은 개 정도로 많습니다. 혼자 마시려고 담은 게 아니란 이야깁니다. 대놓고 하지는 못하지만 청하는 이에겐 팔기도 한답니다. "절 살림에 얼마나 보탬이 될까 모르지만, 그보다 세상 사람들 건강에 도움도 됐으면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여하튼, 이런 술이 세상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니, 가능하지 않답니다. 재배도 안되고 채취도 어려운 담쟁이덩굴이다 보니 상업적으로는 개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들 녀석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고 "수제비 참 맛있었다"고 합니다. 식후 마신 담쟁이덩굴 차는 빗소리에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귀한 술과 음식을 대접받았던 겁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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