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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이브날(저녁) 2012년 12월 24일 저녁 월요일

생활상식

by 수호자007 2012. 12. 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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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어떤분은 정말로 좋은날로 어떤분은 동료, 친구들이 좋다고 하니 덩달아 좋고,

그냥 다음날 쉬는날로 좋고
시작하는 연인들에겐 기대되는 시간일수 있고
현재 연인들에겐 더욱 돈독해지는 날일수도 있고
중년의 나이는 즐거운추억과 슬픈추억이 교차하는 분도 있지요
어떤이에겐 추억이란 시간과 함께 혹은 혼자 보내야하는 날일수도 있겠네요
여러분들에겐 오늘이 어떤날이며, 또는 어떤 날이길 기원합니까.

 

예상 답안

그냥 월요일, 허허 내일 쉬는날로, 추운 밤 네온샤인 아래 따뜻한 커피한잔,

허전한 내가슴의 여인을 기다리는날, 살아온 추억을 되돌아 보는 시간,

삶의 현재를 영위하며 항상 지금의 수준을 감사등........ 그 옛날 눈내리는

초소에 어린아이들이 작은손으로 황금빛 귤 2개를 주고가는 전경과 맛을

지금도 잊을수 없구나.

 이브는 저녁을 뜻함


산타클로스의 유래(12.12.24.월요일 시사중국 펌)

오늘날 성탄절의 유명 캐릭터 ‘산타클로스’의 기원은 4세기 경 실존했었던

미라의 주교 ‘성 니콜라우스(Nikolaus)’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니콜라우스는 천주교에선 가장 유명한 성자 중 한 명으로

어린이와 선원들, 상인들의 수호자로 유명하다.

그를 기리기 위한 12월 6일 ‘니콜라우스의 날’에는 아이들 몰래 니콜라우스가

자루나 신발 등에 살짝 선물을 넣어준다는 풍습이 있다.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이 풍습의 유래는 니콜라우스가 행한 수많은 선행 중 한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특히 그가 가난한 집안의 세 딸에게 지참금을 준 일화가 있다. 그의 교구에는 세 딸을 둔 한 아버지가 있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해 딸들을 시집보낼 수 없게 되자 사창가로 팔아버릴 결심을 했다. 

우연히 이 소식을 들은 니콜라우스는 그 가난한 딸들을 도우려 했으나 겸손한 성격이었던 그인지라 밤중에 남몰래

창문으로 딸들이 출가하기에 넉넉할 만큼 황금이 들어있는 자루 세 개를 던져 놓고 돌아갔다.  

그 덕분에 세 딸은 사창가로 팔려갈 위기를 모면하고 정당하게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수세기를 거치면서 니콜라우스의 축일에 아무도 모르게 선물을 주는 관습으로 발전했다. 

이 이야기는 성 니콜라우스가 살던 오늘날 터키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후 12세기 초부터 프랑스 수녀들이

니콜라우스 축일 하루 전날인 12월 5일 니콜라우스의 선행을 기념해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고

곧 이 풍습이 곧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 갔다. 

오늘날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12월 5일이 되면 벽난로 옆에 양말을 걸어놓거나 신발, 장화, 접시 등을 문 앞에 놓아두고

성 니콜라우스가 그 안에 호두, 귤, 초코렛 등을 살짝 넣어주길 고대한다. 

성 니콜라우스는 훗날 미국으로 전해져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다. 오늘날에는 니콜라우스보다도 산타클로스가

더 유명하고 잘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등 아직도 유럽의 많은 나라에선

이 전통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라틴어로 성 니콜라우스를 뜻하는 상크투스 니콜라우스(Sanctus Nicolaus)는 네덜란드어로

신타클라스(Sinterklaas)라고 불렸는데, 17세기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에 의해 이 발음이

그대로 영어화 되어 산타클로스로 불려지게 되고 19세기경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오늘날의 산타클로스가 됐다.

 현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산타는 12마리의 사슴들이 끄는 하늘을 나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데 그 중 제일 유명한 사슴이

빨간코의 루돌프이며 굴뚝을 통해 들어와 선물들을 나눠 준다. 이 내용은 1823년 씌어진 크리스마스

전날 밤(The Night before Christmas)이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 박사는 182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이 시를 썼는데

그의 친구가 몰래 이 시를 대신 신문사에 보냈다. 그의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이 시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채 박사의

서재에 조용히 파묻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에 감탄한 수많은 신문과 잡지들이 번갈아 가며 실었고 곧 이 시에 묘사된 산타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권위 있는 학자였던 무어 박사는 자신이 동시를 쓴 사실이 밝혀지면 명성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 시의 작자라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된 ‘성 니콜라우스(Nikolaus)’ 미국 코카콜라 사진

 

또,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변하게 된 것 역시 미국에서다. 원래 모델이었던 성 니콜라우스는 지금의 산타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서 오히려 키카 크고 늘씬하며 길다란 주교복과 주교의 모자, 손에는 주교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19세기 만화가 토마스 나스트(Thomas Nast)는 1863년부터 1886년까지 ‘하퍼스 윙클리’라는 잡지사에 당시

크리스마스 삽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빨간 볼에 하얀 수염, 통통한 체격으로 그려진 산타 그림을 20년간 잡지에 연재했고

덕분에 사람들 마음속에 산타는 점차 오늘날과 같은 친숙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이 산타의 모습이 더욱 널리 확산되게 된 계기는 유명 음료회사 코카콜라 덕분이었다. 1931년 겨울철 콜라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를 막기 위한 홍보전략으로 코라콜라 회사의 상징색인 빨간색을 산타에게 입히면서 백화점 홍보에 나선 것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산타클로스와 성탄절을 코카콜라와 연결시키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이 홍보 전략이 상당히

성공했다고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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