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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강희제 자녀교육방법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생활상식

by 수호자007 2012. 12. 2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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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 강희제 자녀교육방법(12.12.시사중국에서 펌)

 

[시사중국]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1654-1722)는 자녀 교육을 아주 중시했다.

이는 중국 역대 황제들 중에서도 아주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강희제는 모두 35명의 아들과 20명의 딸을 두었고 손자들을 모두 합하면 97명에 이르는 대가족이었다.

강희제는 어떻게 자녀들을 가르쳤을까? 그의 교육 방식은 아주 다양했는데 말과 행동을 모두 사용했다.

가령 사냥을 나갈 때나 지방을 순시할 때, 심지어 전쟁을 치를 때도 황자와 황손들을 대동했다.

하지만 이외에 가장 중시하는 방법은 학교 교육이었다.

강희제는 당시 교육기관인

무일제(無逸齊-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안일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을 깨우치는 곳)를 황궁 안에 두고

황자와 황손들을 인시(寅時 새벽 3-5시)부터 유시(酉時 오후5-7시)까지 하루 15시간여를 학습토록 했다.

그리고 하루 두 차례 이곳에 들러 학습을 점검까지 했다.

기록에 따르면 황자와 황손들이 공부한 구체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시(寅時 새벽 3-5시)에 무일제에 들어와 전날 배운 수업을 2시간 동안 복습해야 했다.

당시 황태자의 나이가 13세였는데 새벽 3시가 되면 이미 무일제 서방(書房-도서관)에 도착했다.

당연히 이들의 기상 시간은 이보다 더 빨랐을 것이다.


묘시(卯時 새벽 5-7시)가 되면 황자들의 사부들이 들어온다. 만주어(滿洲語) 사부인 달합탑(達哈塔), 한문(漢文)

사부인 탕빈(湯斌) 등이 상서방에 도착한다. 선생님들이 도착하면 먼저 황태자에게 무릎 꿇고 절하는 예절을 올린 후

황자들의 숙제를 검사한다. 황자들에게 책을 외우게 하는데 황자들은 낭랑하게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외워야 한다.

그 후 한문 사부가 다음 단락을 지정해주고 이어서 다음 단락을 외운다.


진시(辰時 오전 7-9시)가 되면 학생들은 이미 4시간 수업을 셈인데 이때 강희제가 아침 조회를 마치고 곧장 무일제로 온다.

황자들은 건물 밖 계단 아래까지 나가 황제를 영접한다. 강희제가 들어와 자리에 앉은 후 이들에게 책을 외워보게 한다.

황제가 직접 책을 펼쳐 임의로 한 단락을 지정해주면 황자들은 곧바로 외워야 한다. 당시 강희제가 말했다. “

나는 어릴 때 책을 읽으면 120번 낭독한 후에 120번 암송했다. 완전히 숙달된 후에야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데

이렇게 한 단락씩 배웠다.”

이때 어떤 대신이 “폐하 100번만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묻자 강희제는 반드시 120번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 황제는 사부들에게 방금 외운 것이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어떤 사부가 태자가 아주 총명하고 아주 잘 외웠다고

말하면 강희제는 “당신들은 그를 칭찬하지 말고 그들을 많이 비판해야만 교만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검사를 끝낸 후 강희제는 다른 정무를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사시(巳時 오전 9-11시), 이미 복날이 가까워져 날씨가 몹시 더웠다. 하지만 황자들이 책을 읽을 때 부채를 지니거나

부채질을 할 수 없으며 바른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그날 배운 문장을 100번씩 서예 연습을 한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가 되면 점심을 먹는데 시종들이 식사를 가져오면 황자들은 우선 사부들에게 양보한다.

사부들은 무릎을 꿇고 식사를 받은 후 각기 자기 자리에서 식사를 한다. 황자들도 그 옆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를 끝낸 후에는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업을 진행한다.
미시(未時 오후 1-3시)가 되면 황자들이 무일제 밖에 있는 정원에 나가 말을 타거나 활쏘기를 연습한다.

한편으로는 휴식을 취하고 체육활동을 하는 동시에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다.
신시(申時 오후 3-5시)가 되면 강희제가 다시 무일제에 와서 황자들이 공부한 것을 다시 검사한다. 이번에는

여러 황자들에게 외우게 한 후 몇몇 황자들이 짝을 지어 한 번씩 외우게 한다.
유시(酉時 오후 5-7시)가 되면 무일제 밖에 나가 활쏘기 연습을 하는데 먼저 황자들에게 한발씩 쏘게 한다. 그

 후 사부들이 한발씩 쏘고 마지막으로 황제가 직접 활을 쏘는데 사서(史書)의 기록에 따르면

강희제는 ‘백발백중’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 후에야 하루 수업이 모두 끝난다.

즉, 이들은 새벽 3시부터 오후 7시까지 수업을 받았다. 더 중요한 것은 단지 하루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매일 이렇게 했으며 춥거나 덥다고 하여 공부를 쉬지 않았다.
이처럼 강희제는 자손들에 대한 교육이 아주 엄격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강희제의 아들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정치가 타입이다. 옹정(擁正)제나 건륭(乾隆)제처럼 황제가 된 인물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강희제의 아들인 옹정제는 아주 뛰어난 황제였고 손자인 건륭제 역시 훌륭한 황제였다.
그 외 두 번째 유형으로는 학자타입을 들 수 있다. 가령 셋째 아들 윤지(胤祉)는 아주 뛰어난 과학자이자 유명한 ‘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1만권의 편집책임자였다. 세 번째 유형은 바로 예술가 타입인데,

서예나 회화에 모두 뛰어난 재능이 있는 황자들도 있었다.
네 번째 유형은 바로 생활형이다. 특히 황자의 모친이 서열이 낮은 경우 황제 자리 경쟁에 참가하기란 불가능했고

이 경우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이렇게 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 강희제의 황자와 황손들 중에서는

건달이나 한량,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출처:明慧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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