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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유래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생활상식

by 수호자007 2012. 12. 2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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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는 (12.12.24.노컷뉴스 펌)  예수 탄생일은 성경이나 복음서에 나와 있지 않다

 

연말연시와 맞물려 개인의 신앙과 무관하게 온 국민이 즐기는 축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예수탄생을 기념하는 축제 정도로 알고 있지만

그 유래나 전통과 관련해 의외로 잘 못 알고 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많다.

크리스마스는 예수탄생 이전부터 유럽에서 행해지던 한겨울의 축제였으나 유럽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성탄행사와 결합해 생겨난 것이다.
미국 온라인 과학전문 뉴스사이트인 라이브사이언스는 성탄절을 맞아 크리스마스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흥미로운 사실을 정리해 24일 보도했다.


1. 초기 기독교도는 이교도들에게 애착을 가졌다.
영국 레스터 대학에서 초기 독어와 영어를 연구하는

필립 쇼 교수는

크리스마스 전통이 예수 이전의 이교도 신앙에서 비롯됐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런 측면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인은 예수탄생 후 1세기에 기독교를 유럽에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각 지역에서 다양한 토속 종교들과

충돌을 빚어야 했다. 당시 기독교 전도사들은 이들을 모두 이교도(pagan)라고 불렀다. 이 말은 라틴어의 들(field)에서

유래한 것이다. 초기 유럽의 기독교는 도시에서 먼저 선교가 이뤄졌으며,

시골에서는 상대적으로 이교도의 신앙이 훨씬 오래 지속됐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교도들의 개종을 원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전통도 존중했기 때문에 이교도의 신앙에도 많은

흥미가 있었다. 이교도의 신앙은 분명히 나쁜 것이지만 그들의 조상들이 행해온,

기억할 가치가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

이점이 기독교로 개종된 이후에도 이교도적 전통이 지속됐던 이유였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경우 17세기 독일에서 시작됐지만

분명한 것은 한겨울에 집안을 장식하기 위해 푸른 나무를 집안에 들여 놓던 이교도의 풍습에서 유래한다.

현대의 산타클로스는 영국의 파더 크리스마스의 직계 자손이라고 할 수 있다.

파더 크리스마스는 원래 선물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유럽의 비슷한 캐릭터도 마찬가지지만

파더 크리스마스는 한겨울에 하늘을 여행하는 영혼들에 대한 오래된 이교도의 개념이 현대에 와서 다른 형태로 구체화.

2. 한겨울에 따듯한 축제가 필요했다

왜 크리스마스 파티는 한겨울에 열릴까?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축제가 이 시기에 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농경사회에서 이 시기는 한 해의 추수가 끝나고, 들판에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다.
이런 농한기야말로 신앙생활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활력을 되찾아야 할 기간이기도 하다.

겨울이 최고조에 이르고 밤이 가장 길어지는 시점에 축제와 장식으로 어둠을 밝히게 되는 것이다.

더 배틀 포 크리스마스(The Battle for Christmas)의 저자 스티븐 니센바움은 한겨울에 두려움과 추위,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지역에서 산다면, 우울함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정도가 가장 심한 시점에 축하행사를 갖고자하는 강한

열망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3. 교회는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기독교의 전파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동안 한겨울 축제는 크리스마스로 되지 않았다.

성경은 예수가 언제 탄생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이 문제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별 의미도 없었다.
복음서에도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에 대한 언급이 없고, 성경의 지시도 없었기 때문에 로마의 종교지도자들은

4세기가 되어서야 한겨울 축제를 받아들였다. 이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실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영적 실체의 일종으로 존재했을 뿐이라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로마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믿음이 기독교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 겨울 축제 기간과 성탄일을 결합해 크리스마스를 만들었다.

니센바움은 “당시 교회는 예수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았던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성탄일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이교도에 뿌리를 둔 한겨울 축제는 유럽에서 이미 널리 퍼져있었고,

성탄일은 밤이 가장 긴 동지를 지나 낮이 길어지고 있는 것을 축복하는 축제의 성격과 철학적으로 잘 맞아 떨어졌다.

4.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를 혐오했다

가톨릭교회가 점진적으로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면,

그 후 16세기의 종교개혁은 크리스마스 축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니센바움에 따르면 가톨릭과 개신교로 교회가 분열되는 16세기 크리스마스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개혁적 성향의 신교도들은 크리스마스를 이교도의 신앙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간주했다.

이는 아마도 크리스마스 기간의 소란스럽고, 때로는 방탕하기까지 한 축제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리버 크롬웰(1642~1651년 영국의 청교도 혁명에서 왕당파를 물리치고 공화국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군인이자 정치인)

시대에는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의 기념식이 금지됐다. 뉴 잉글랜드에서는 1600년대 약 25년간 크리스마스를

축복하는 일이 불법화되기도 했다.


5. 크리스마스 선물은 원래 없던 전통이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원래 이 시기의

선물 유래는 새해 첫날 선물을 열어볼 수 있도록 주고받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기분 좋게 한 해를 마무리하라는 의미인데 1800년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와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신년 선물을 대체하게 된다.
영국 왕실 기록에 의하면 빅토리아 여왕의 아이들은 1850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칼과 갑옷을 선물로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1841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그의 남편 알버트 공에게 그녀의 7세 때 모습이 담긴 소형 초상화를, 1859년에는 시인 테니슨의 시집을 선물로 주었다.

선물을 주는 행위에 대해 일부 종교 집단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의 상업주의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종교적 목적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술에 취하고, 흥청거리는 크리스마스 모습을 보고 분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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