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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얘기 2012년 11월 7일 수요일

생활상식

by 수호자007 2012. 11. 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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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예비 특전인들에게 바칩니다.. (유조은 스크랩)

저는 서울창동초등학교...수유중학교...서울북공고....동양공업전문대...의 학교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많은 예비특전인들이 궁금한 사항도 많고 답변도 많고 많은것을 미리알고 군대를 갈 수 있는
현실이 실로 부럽습니다...
솔직히 저는 특전사가 뭔지 해병대가 뭔지도 모르고 지원했다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듯
닥치는대로 살아 왔었습니다..

사회에서 정보를 알고 지원을 했더라면 내가 현재의 길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수 있었을텐데
무작정 손을들고 보니 이곳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루하루가 그리고 다가올 훈련과 교육들이 항상 공포로 엄습해 왔었던 현역때
의 기역도 있습니다. 당시에 이겨내는 나만의 최면술. 쇠뇌교육은 ~~~~~~~~
[넘들 다 하는데 내가 못할께 뭐 있노]라는 신조 였습니다...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중학교 때에는 새로생긴 학교로써 3회졸업생 이었으며 유도반에 들어서 제일잘하는 학
생 낙법,공격, 조르기, 잡기술이 좋았었던걸로 기역합니다..
초등시절에 너무 못살아 벽돌공장에 매일 모래를 형 둘과 중랑천에서 파 가지고 리어커 1대
에 2원50전을 받았던 기역도 있습니다..
이 계기로 왠만한 뚝심과 팔시름은 타에 추종을 불허하지요...

3년동안 유도로 기본을 다졌다고 해야하나요...
아니요 초3학년부터는 태권도를 했었습니다 옆집에 아저씨가 사범이었는데 저는 특별히

공짜로 가르켜 주었어요...
드디어 서울북공고란 곳의 "기계과" 당시에 만점이 200점 이었는데 서울북공고의 기계과

컷트라인이 157개 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공부는 곳잘 했는지 합격을 했습니다..
1학년때 6개월은 오리엔테이션을 하지요...
어린 마음에도 우리집 형편상 진학은 안되기에 공업쪽으로 직업을 택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 공업고등학교는 "동계진학" 이란 방편이 있었지요..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중 나에 눈에 신기한 기계가 들어 왔습니다..
"쇠가 쇠를 깍아 내는 장면이 들어 왔는데 너무도 신기 했어요"
이 세상에 쇠가 제일 강한줄 알았는데...
그날부터 나는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꿈속에도 나타나고 실습을 하고 있었던 선배님들의 모습이 커다랗게 각인되어

너무도 존경된 모습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나는 혼자 견디다 못해 방과후 실습장으로 기웃 거렸습니다...
당시에 나에 키는 너무도 작았습니다... 반에서 1번이었으니까요 145정도...
"얀마 너 뭐야" "충효/^^ 1학년입니다" "근데 여기 뭐하러 왔어?"
"보고 싶어서요!" "뭐가" 이 기계요" 뭐 기계 하하하....이거 선반 이라는 거야 영어로는 더 레스"
"아하 선반이요? 선반은 물건 얹어놓는 대를 얘기하는건데<><><>"
"들어 와라" "예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선반과의 두번째 대면을 하게 되었다..
그분은 기능올림픽 출전선수란다 나에게 이것 저것 가르켜 주었다...
그리고 "바이트" 하나를 주며 0.1mm씩 깍아 보라고 했다... 나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쇠가 쇠를 깍고 있는 것과 내가 이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로 믿기지 않았다...
그 선배님은 밤10:00시 까지 실습을 하였다..
"얀마 너 집에 안가냐?"[아니 나는 얀마가 아니고 *마 인데ㅋㅋㅋ]
"선배님은요?" "나는 여기서 합숙한다" "예......에........"서운했다 밤새도록 하고 싶은데.....

나는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거의 4개월을 그렇게 선반 실습장에서 살았다..
그 선배는 나를 자기 동생처럼 아껴 주었다 빵도 사주었고 우동도 사주었었다..
지금에 생각해보면 기능올림픽 선수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무난히 힘이 들었던것 같다.
아침에 등교하여 밤10:00시 까지 실습에 메이고 성적을 내야하고 기능과 외관에 높은 점수
의 작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드디어 1학년 2학기가 되어 각 파트별로 지정하게 되었다..

[1차지망 선반, 2차지망 선반, 3차지망 선반]

그때부터 특전깡다구 기질이 있었는지 모른다...
기계과 과장님으로 부터 호출이 있었다..
"야 이놈아 1학년 자식이 선생님과 장난치나?" "예?"
"뭐야 이거 1차2,3차 모두 선반 이잖아?" "예 저는 선반만 할랍니다"
"너는 키가 작아서 안돼"
"아닙니다 저는 선수 선배님과 넉달정도 해서 1,2학년 실습 과제는 다 끝냈습니다"
"야 선반보다 작은놈이 어떻게 한다는 거야"
"너는 안돼니까 기계제도나 해라 엉?" "못합니다 선반 할랍니다"
"안돼 너는 기계제도야......." 그렇게 기계과장님은 나를 무시해 버렸다...
나는 버팅겼다 선반이요.......선반이요..........
한 삼일을 졸랐더니 과장님은 직접 눈으로 보겠단다 그리고 과제를 주었다..
1학년2학기 과제... "과장님 이거는 너무 쉬운데요?"
"뭐 그럼 3학년꺼 주세요" "이놈 봐라"

나는 3학년 2급 기능사 과제를 받았다...
8시간에 80점이상의 작품을 만들라는 것이다...
나는 당시에 너무작아 선반보다 키가 작았다 하여 항상 발판20cm짜리를 가지고 다녔다...
작업에 심취하여 있을때 뒷켠에서 과장님이 보셨던것 같다...
6시간 정도 흐르고 나는 두시간이나 앞당겨 과제를 마무리 지었다...
과장님이 직접 채점을 하였다... 한참후에 과장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야 정** 너 내일 부모님 모셔와라" "저기요 아버지 어머니 모두 일을 나가셔서 못 오시는데요"
"그럼 여기에 도장 받아와" "예 알겠습니다"
뭔 각서 같은것이었는데 "서울북공고 기능올림픽선수반 가입 허락서" 였다.. 순간 나는 어이(의식)가 벙벙했다.....

날아가는 비행기의 느낌이 이것이었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니 돈 들어간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울고 불고 사정을 해도 부모님은 허락을 안 하였다..
나는 목이 다 쉬어 버렸고 밤새 울었더니 온 얼굴이 부었었다..

다음날.... "과장 선생님!" "그래?" "아버지가 돈 들어간다고 안된데요"
"어허! 기능반은 전액 학비보조에다 장학금까지 지급을 하는데 밑에 내용은 안 읽어 보신것
아니냐?"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나랑 네 아버지에게 가자"

그렇게 우리 아버지와 선생님은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굉장히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셧던
기역이 있다...
차후에 안 것이지만 내가 만들었던 실습과제의 점수가 100점 만점이 나왔던것이다.
"북공고" 역사이래 1학년 신입생이 어깨넘어 배운 실력으로 만점이 나온것이 었다...
바로 나는 기능반에 합류가 되었고....
과장님의 지시로 3학년 선배님과 대등하게 기능올림픽 과제를 연습하게 되었다...
가을에 전국기능올림픽이 열렸다......

나는 1학년 신분으로 최초로 역사이래 선수로 출전이 되었다..
각종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키가작고 1학년이란 것 때문에 한때 1년간 "대한뉴스" 라는

영화관에 방영도 되었었다.. 인터뷰와 신문에도 나왔었다...
[기능인은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로고와 함께....
결과는 전국에 8위를 하였다..북공고 3학년 선배님은 45위권이었다(각 학교당2명출전)

출전선 수는 400명가량 이었다...

서울북공고가 난리가 났었다...
참고로 기능반은 수업이 없다 등교하면 곧장 실습장이었고 하교도 마찬 가지였다...
2학년 3학년 동창이 누구인지 내 교실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학교성적은 자동으로 10등안에 들어주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출석부에도 기능반 이라고 도장이 찍혀있어 시험도 보지 않았다...
드디어 2학년이 되어 전국 기능올림픽, 실업고 경연대회에 출전하여 금메달의 영광과

대학교 진학 특전을 받았다... 허나 가정 형편상 대학은 다른나라 얘기였다...
3학년이 되어 나는 더 이상 출전할수 없는(금메달을 땄었기 때문에) 상태에서 사회실습을
나가라는 추천을 받았다.. 동양공업정밀(주)스카웃이 들어왔다...
6개월의 실습중 터득한 것은 대한민국은 학벌주의가 너무 팽배하다는 것이었다.....
선반에 선자도 모르는 반장이 와서 이러고 저러고 잔소리가 많았다..
그는 전문대 출신 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자는 아무리 뛰어나도 기능직이고 간부는 될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문대를 가기로 마음먹고 "동계진학" 원서를 냈다..
당당히 동양공업전문대 기계공학과 학생겸 조교수로 채용되었다....

그렇게 1년반의 세월이 흐르고 가정에 형편이 극도로 안좋아 졌었다...
형님과 동생이 병으로 인하여 입원을 하게되는 사태에서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벌은 돈마져
병원비로 날라가고 나는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이후의 글들은 앞에서 다 피력을 했었다.. 해병대에 지원을 했었고.....
결국 특전사를 오게 되었다....
지금에 나는 기능인이 아닌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생활체육" 에 종사자가 되어있다.. 국민생활체육전국족구연합회 사무처장
대한족구연맹 기획실장, sbs해설위원.내 삶이 내 것이면 내맘대로 할수있을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삶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스스로의 길이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처한 현실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예비특전인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리고 나처럼 그 힘든 현 생활을 탈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전사"를 지원하는 예비후배들
도 많은것으로 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얘기한다..
그래 그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나는 내가 바랬던 조국근대화의 기수는 못되었어도....특전사에
몸 담았었던 시절을 절대 후회 해본적은 없다고...
예비 특전인에게 바치는 글이 었습니다......

 나에 주특기는 특전특기 폭파하(부)사관 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 겸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측면으로 "돌폭"이라 자칭을 했었다.
그것은 각 주특기 중에서도 외우는 항목이 제일 많은 과목이 폭파이기에....
잘 외우지 못하는 머리들은 머리통에 몽둥이 찜질이 장난이 아니다..

개화산의 매미잡기는 따논 당상이고...
개화산의 김일성 별장까지 선착순은 기본이었다..
물론 똥통 낚시터까지 돌림빵은 아예 교범에 나와있고.......
겨울 물속의 잠수는 역시 교안에 나와있다...

TNT폭속7,000(구6,900)M....위력1(기본폭약)
다이나마이트 6,100M위력0.92.........
PETN8,300M위력1.34.......RDX8,600M....................
.........................................................

이것이 수십가지 요? 설치방법 매기법..특수폭약 만들기....설치법...폭약소지 침투법......

증말 돌대가리 적응하기 힘든 것이 폭파주특기였다...
헌데 이 많은 것이 순식간에 외워지는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대대적인 여단의 막사 이전 관계였다..
1여단은 구 막사(콘센트 또는 허스름한 벽조건물)에서 신막사(현 막사)로 이전 하면서 구막
사 철거 작업을 대대별로 돌아가며 사역을 하는 일이 생겼다.
당시에 이 사역작업이 보통이 넘어서 빨리 "천리행군" 이나 나갔으면 했었다..

우리 대대의 사역이 떨어 졌다..
5.6대의 콘센트를 철거하고 팀 막사를 철거하는 작업을 하는 가운데 놀라운 일이 발생을 했다.
120ft 로프를 각 중대것을 다 동원하여 막사 전체를 묶어 끌어당겨 부셔 버리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놀랬냐고... 나를 그 정도로 밖에 생각 안하나요...

"우지지직.......와자작.......와당탕......." 막사가 넘어 갔다...
헌데 번쩍이는 금광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이다... 그 금광이 뭐냐고....
"야 저거 뭐야?" "글쎄요" "가봐?" "예" "뭐야" "실탄 인데요"
"그래 어디 보자" 정말로 많은 실탄들이 쏟아져 나왔다..
긴급으로 여단 본부에 보고를 하였다...
실탄을 확인검색을 하고보니 대한민국의 실탄은 아니고 미군의 실탄인 것이다..
즉 5.6대 막사는 구 미군 막사 였었다..
미군들이 잉여 탄약을 목조건물인 막사 틈바구니에 수천발을 숨켜 놓고 철수를 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금속 탐지기가 동원 되었다.. 헌데 더욱 큰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금속 탐지기가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움직이기만 하면 위윙 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야 여기 폭파 하사관 누구야" "예 하사 정 ** " "이리와 여기 파봐" "퍽퍽퍽........." "으악.............."
"이거 지뢰 같은데요..............." "전 여단병력 작업중단" "전 병력은 도로를 걸어서 집결 하도록......."

사태가 실로 심각 해졌다... 5.6대 막사 부근의 모든 지역이 지뢰가 있는 징후가 보이는 것이다..
각 대대 폭파하사관이 여단의 지시로 지뢰 적발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헌대 이놈의 것도 무슨 작전인가?
"1대대가 지휘하여 전 지뢰를 제거하라" 1대대가 무신 소모품인겨.........!
5기선배 정**상사 님이 진두 지휘권을 받았다.. 대대 폭파 할부지 들이 다 모였다..

땅을 뒤집어 엎어야 했다... 사실 안심이 되는건 지뢰를 목적상 설치 한 것이 아니고..
미군들이 잉여 대인지뢰, 대전차지뢰, 등등을 막사 지하(땅)에 묻어 놓고 철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장전이 되어 있질 않아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파내어 논 지뢰량은 실로 엄청났다... 실탄, 공포탄, 지뢰, 교보재, 수류탄.........
훈련에 쓰이는 실 탄약을 미군이 훈련이 캔슬 되면서 남은 잉여품을 땅속에 묻어 논 것이다...
60트럭으로 한 차 정도의 량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에 사용할 수는 없는 물건들이다..
녹이 쓸고 오래되어 부식이 되어 있으니 그러나 지뢰는 지뢰이다 언제 발발할지는 모른다..
여단에서는 이 처리 문제를 또다시 1대대에 넘겼다....
"더러워서 악돌이 1대대 파이팅"
정예 폭파요원 4명이 행주대교 밑으로 향했다...
TNT.COMPOSITION.뇌관을 들고 폭파를 하러 말이다...
헌데 죽을 맛은 행주대교 물 속에서 폭파를 실시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정화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행주대교 밑에 서울의 분뇨(똥)는 다 이리로 집결하여 방류하는 시대였다..
썰물때는 그럭저럭 똥덩리가 안 보이는데..
밀물때는 방류한 똥덩어리가 다 떠 들어온다..
오바이트가 나오려는 냄새를 안고 물속으로 대전차 지뢰, 대인지뢰를 들고 도전선을 이끌고
4-50여 미터 수장해야 했다...
대전차 지뢰의 경우 2개씩 터 트리면 물 기둥이 실로 장관이다..
거의 50여 미터 쏫구친다...
이것도 잠시 한 두번이야 재미가 있지...
트럭 한 대분을 폭파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거의 보름간 이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신물이 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폭파요원으로 발탁된 우리는 거의 온몸에 "똥독"이

올라 벌겋게 되었으며 부스럼이 일어났다...
우리네들(쫄다구) 생각에는 보트를 수령하여 시한장치를 하면 쉬울 일인데..
교육과 훈련을 겸비하는 측면에서 몸으로 떼우란다.
실로 드러워서(행주대교 똥) 못해 먹겠다는 소리가 연발이었다..

"선임하사님 이거 너무 한 것 아니예요" "뭐가 임마?"
"아니 아무리 게릴라지만 이거 똥통에서 폭파는 너무한것......아........"
"퍽.......퍽..........." "야 새끼야~~~~ 침투할 때 하수구 똥통이 문제냐........"
"쥐새끼 썩은 것~~~~ 갈치 대가리를~~~~~~콩나물 대가리~~~~~
머리에 뒤집어 쓰고 침투를 해야 하는데 엄살은 새끼야.....~~~~~"
괜히 한마디 했다가 드럽게 맞었네...... 대가리 박기를1시간 가량을 했다..

쌩그루 상사님께 말꼬리 붙든다고....... 군대는 까라면 까야 한다나 뭐라나???
"*으로 밤송이 까라면 까야한다..." 에이 씨펄 나는 못까.......ㅈ 문들어질 있어.....

엄청만은 량의 지뢰를 다 폭파하고 나니 일이 끝났냐고 그럼 재미없지..
이후 수류탄을 없애는 일이 생긴거야... 수류탄은 솔직히 폭파가 잘 안되는 취약점이 있었다..
하여 우리는 개화산 야전 사격장의 200M사선에 놓고 트라이락스 저격 사격으로 터트리기로
하였다..졸지에 폭파하사관이 "저격수 집체"를 하게 된 것이다..
사선에 10발씩 놓고 저격 사격을 시작하였다..
헌데 이놈의 수류탄 이라는 것이 몸통을 맞아서는 안 터지는 것이다..
밑둥에 평면 부분1.5cm정도 되는 부분이 정통으로 맞아야 되는 것이다..
처음에 각 사로당 100여발을 쐈는데 한발도 안 터졌다.. 하여100m로 사선을 변경하여 쏘기 시작했다..
드디어 첫 폭음이 울렸다.. "쾅" 그에 사수는 바로 나였다..인간 승리가 시작이 된 것이다...

"쾅" "쾅"~~~~~~~~~~~~~~~ 계속적으로 터지기 시작하였다..
폭파 하사관이 100m 1.5cm 과녁에 정통으로 저격사격이 숙달되는 과정이다...
신나는 것도 잠시....수천발을 사격하다 보니 사격에는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오른 쪽 눈 두덩이가 부어 오르고 트라이락스 완충고무의 물이 베어 시커멓게 변하는 것이다...
이러기를 이주일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
지뢰 등등 수류탄 각종폭약.......등의 제거 작전이 끝이 난 것이다...
이후 1대대 저격수 요원이 이상하게 폭파하사관이 배정이 되 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 났다..
[나는 소총이 두개였다 K1A1 1정..M16A1 1정]
팀별 저격수 경연대회에 상위권에 랭크 된 요원은 전체 폭파하사관의 몫이 되어 버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애꾿은 화기하사관들만 대대에서 뺑뺑이 돌고 보는 우리는 참으로 죽을 맛 이었다...
이후 나는 대대저격수로써 "여단경연대회" 에 참가입상 하였으며...
"참모총장기" 3자세 저격수경연대회에 출전을 하는 영광을 얻었다..
전군이 출전하는 저격수 경연대회에서 두서와 같은 성적은 올리지 못했으나
이후 나는 사격에는 여우로움을 가졌었다..

거의 6-7년간 자동화 사격은 한발도 꿩 잡은 적이 없었다...
지금도 예비군 훈련시 영점 사격을 하면 10원짜리 동전 크기의 탄착군만 형성된다...
84년경의 일이지만 그때 행주대교의 똥물만 아니면 참 좋았는데...
그놈의 서울의 똥은 왜 한강에 무조건 버렸는지 지금의 행정으로는 납득이 되질 않는다.....
ㅋㅋㅋ...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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